지난 몇달동안 직장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두절하고 지내던 워싱턴 DC 근교에 사는 남동생이 어제 저녁엔 왠일로 제가 퇴근하고 어느 모임을 향해 가는 중 전화를 하였습니다. 통상 나누는 그간 잘 지냈냐는 인사도 없이 대뜸 5분만 통화할 수 있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한 남동생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들어보니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누나가 얼마전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그동안 식물인간으로 투병을 하고 있었는데 전혀 희망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받아들여 식구들이 고심끝에 산소호흡기를 떼어내었고 저한테 전화하기 약 두시간 전에 온식구가 바라보는 가운데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망한 여성은 본인 자신이 유명한 뇌전문의였고 싱글맘으로서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그 누가 보아도 건강했던 40대 중반의 전도유망한 전문인이었다고 합니다. 아직 어린 미성년자녀 둘을 두고 있었던 그 여성의 갑작스런 사망은 남은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과 아픔을 주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을 세상에 두고 먼저간 자식. 죽음은 정말로 차례가 없습니다.
매사에 철두철미했던 그 여성은 다행히 미리 유언장을 비롯하여 본인의 어린 자녀들을 위한 철저한 상속계획 그리고 본인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LIVING TRUST 등을 생전에 미리 준비를 해두었으며 이 모든 것을 집행할 사람으로 본인의 남동생을 지목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제남동생의 친구는 갑작스레 누나를 잃은 큰 슬픔을 마음껏 표현할 시간도 없이 유언과 신탁집행인으로서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몰라 당황하여 변호사친구에게 전화를 하였고, 비록 변호사이지만 분야가 다른 제 남동생 역시 급히 친구의 집으로 향하며 관련정보를 얻으려고 저에게 전화를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몇가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다시 연락을 하기로 하면서 서로 건강하게 지내자는 말로 남동생과의 간만의 통화를 마쳤습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참석하게 된 저의 어제 모임에 강연하신 분은 공인회계사였습니다. 올해 세금 보고 할때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새로 개정된 세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미국사람들이 흔히 농담처럼 많이 하는 표현, 즉 인생에서 확실한 건 "죽음과 세금" 뿐이라는 말이 실감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독자 여러분들도 주위에서 간혹 들리는 갑작스러운 사고 혹은 아시던 분의 지병에 의한 사망소식을 접하실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사전에 상속계획을 하지 않아서 식구들이 예상하지 못한 손해나 귀찮음을 경험하는 모습도 보셨을 줄 압니다. 혹은 독자 여러분께서도 상속계획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 주제가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굳이 떠올리기 싫어 상속계획을 미루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몇주동안 바로 이 죽음에 따른 법률문제인 유언, 신탁, 상속제도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다들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상식으로 잘 알고 있는 상속과 재산권에 대한 정보를 중앙일보 한인독자분들도 익숙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는 그 첫 주제로 시카고가 위치한 일리노이주에서 부부사이의 재산소유관계는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