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큰 딸아이 여진이가 지난달에 만 21살이 되었습니다. 이젠 식당에 가서도 떳떳이 함께 와인을 마실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된것이지요. 어릴적부터 독립심도 강하고 남달리 책임감도 있는 편이라서 비교적 믿고 안심을 하는 편입니다만, 실은 아마도 제가 신경을 덜 쓰려는 마음에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실은 상대적이고 제한된 믿음입니다. 혹시 불행하게도 지금 저희 부부가 같이 갑자기 사망한다면 여진이가, 얼마되지는 않지만, 받은 상속재산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할런지는 의문이 듭니다. 사실 나이만 어른이지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것은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은 여진이는 모르지만 (쉿..비밀입니다), 저희 부부가 다 사망을 한 경우, 만약 여진이가 만 30세전이라면, 여진이에게는 상속재산의 단 한푼도 직접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여진이를 위한 신탁(Trust)을 제 유언장을 통해서 미리 세워놓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운 이 신탁은 유언장을 통하여 제가 사망후 비로소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본인이 사망후 효력이 생기는 신탁을 Testamentary Trust (사후신탁)라고 합니다. 반대로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효력을 발휘하는 신탁은 Living Trust (생전 신탁)라고 합니다.
그럼 사후든 생전이든 신탁이란 무엇인가요. 신탁이란 말을 들으면 한국에서 최근에 온 이민자는 어렸을때 순정만화나 그리스신화에서 주인공이 하늘의 명령이라며 받은 부탁을 떠올리게 되거나, 아니면 은행에서 운영하는 저축상품의 하나를 떠 올리게 마련입니다. Trust 라는 단어는 여러 뜻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상속계획의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탁은 신탁자(Trustor)가 수혜자(Beneficiary)의 이익을 위하여, 그의 재산의 처분권한을 수탁자(Trustee)에게 맡기는 3자간의 일종의 법률계약서입니다. 모든 신탁은 개념적으로 삼각관계입니다. 여진이 경우로 바꿔 말하면, 제가 사망한 경우에 제 상속재산이 바로 여진이에게 넘어가는 것 대신에, 신탁을 만들어 수혜자인 여진이를 위해, 수탁자인 제 남동생이 재산을 맡도록 해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수탁자인 제 남동생이 여진이가 30살이 될 때까지 여진이의 교육과 건강을 위해 사용한 뒤 그 후에 여진이에게 남은 재산이 가도록 해 놓은거죠. 30살이 되면 아무래도 경험과 연륜이 쌓여 돈을 낭비하지 않을거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럼 제가 신탁을 세웠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제가 죽은 뒤에도 재산을 제 의지대로 관리하고 싶었던 겁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지만, 신탁이란 제도를 통해 제가 죽은 뒤에도 재산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탁을 세우는 이유는 그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신탁없이 유언을 남기는 경우 사망과 동시에 유언은 probate 법원에 파일되면서 공공기록이 됩니다. 이에 반해 신탁계약은 계속 개인적인 법률서류로 남습니다. 또 이러한 법원절차를 거치면서 내게 되는 probate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도 신탁을 세웁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신탁을 세우느냐에 따라 상속세나 증여세 등 세금을 절약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신탁제도는 이렇게 매우 유용한 상속계획의 방법입니다만, 일반인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탁제도에 대한 설명을 앞으로 몇번 더 드리려고 합니다.
어쨌든 제 딸 여진이는 이 글을 읽지 않는다면 (실은 그녀석 한국말 실력을 생각할 때 이글을 보게 될 일은 없겠습니다) 자기가 30살이 될때까지 엄마아빠가 죽더라도 1전 한푼 못 받는다는 것을 모르겠지요. 여진이는 지금 그저 21살이 된 것에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